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십시오.
진정한 이익은 바른 마음을 가져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이익을 위해서는 물질적 손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적 이익을 집착하면 정신이 황폐해져서 더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물질적 이익은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하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또한 물질로 인하여 스스로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으면 계율이 청정해져서
마음이 청정해지고 견해가 청정해 집니다.
이것이 지혜를 얻는 것으로 가장 큰 이익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계속해서 인식과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바로 마음이 대상을 맞이할 때 한 순간에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이러한 인식과정을 연속적으로 거치면서 진행됩니다.
눈이 형상을 볼 때에도 빠르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식하며
귀가 소리를 들을 때에도 빠르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식합니다.
그리고 코와 혀와 몸이 감각대상과 부딪힐 때에도 똑같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인식합니다.
이처럼 마음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는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과정을 순서에 의해서 분명하게 지키면서 가기 때문에 이것을 마음의 결정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인식 과정은 모든 것이 6개의 범주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세상은 6개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6개의 범주를 벗어난 것은 인식할 수 있는 실재가 아니라서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세계관은, 6문(門)이 6경(境)에 부딪혀서 6식(識)을 하는 18계(界)라고 합니다.
18계를 전부, 일체,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체를 알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외의 것을 모두 아시지만 그것은 번뇌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의 범주에 넣지 않습니다.
이상의 6가지의 범주를 좀 더 자세하게 분류하면
첫째, 6가지의 토대가 있습니다.
둘째, 6가지의 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각기관입니다.
셋째, 6가지의 대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각대상입니다.
넷째, 6가지의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6식입니다.
다섯째, 6가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6가지의 감각기관이 있으면 저마다 6가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여섯째, 6가지의 대상의 나타남이 있습니다.
이상이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부입니다.
모두 이 범주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보면 이세상이라는 것이 6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이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부처님의 선언도 이런 맥락에 기인한 것입니다.
불교가 인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은 바로 그것이 해탈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모두 하나같이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이 지은대로 받습니다.
더 자세하게 보면 마음이 한 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도 이처럼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런 것을 움직이게 하는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아가 있어서 움직이게 하거나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있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이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인식과정이라고 합니다.
다음 두 번째는 인식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벗어난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은 인식의 과정을 벗어난 마음이라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통하여 지혜로 알아야합니다.
원래 불교에서는 6가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혀서
6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인식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가 아닌 것은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은
6가지 감각기관 안에서 일어난 마음이지만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마음은 재생연결식과 잠재의식과 죽음의 마음입니다.
태어날 때 재생 연결식과 재생 연결식이 일어난 뒤에 흐르는 잠재의식과
마지막의 죽음의 마음은 인식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도 엄연히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에 의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을 알아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과정에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인식의 과정을 벗어난 마음을 통하여 인식하는 세계에 삽니다.
그러다가 다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에 의해 윤회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간과해서는 안 되며,
인식할 수 있는 마음과 똑같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재생의 바른 의미와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음 사항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재생 연결식과 잠재의식과 죽음의 의식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범주에 있는 것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밝혀진 것들입니다.
처음에 이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지혜가 나면
이러한 현상계의 진실을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네 가지의 세계입니다.
둘째,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입니다.
셋째, 네 가지의 업이 있습니다.
넷째, 네 가지의 죽음입니다.
이상 네 가지의 분류는 윤회하는 세계에서 거듭되는 마음들입니다.
태어날 때 재생 연결식의 상태에 따라서 네 가지 중의 하나의 세계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잠재의식이 흐르면서 업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음의 마음을 갖습니다.
죽을 때의 마지막 마음은 평생 동안 살아 온 마음의 결정체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마음에 있는 과보가 다음 마음에 전해져서 다음 생의 재생 연결식이 일어납니다.
이 재생 연결식에 의해 어느 세계에서 어떤 생명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환생이 아니고 여기서 재생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 바로 윤회입니다.
죽을 때의 마음과 재생 연결식은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죽을 때 이미 마음과 몸은 모든 기능을 상실해서 끝납니다.
그러므로 전생과 현생은 전혀 다른 생명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종자가 있어서 살아있는 동안 행한 과보심이 다음 마음에 연결되므로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마음은 아니고 다른 마음이지만,
과보가 전해졌기 때문에 단지 원인과 결과만 있습니다.
이것이 윤회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전생과 현생이 같은 생이라거나 아니라거나 할 것이 없고,
단지 원인과 결과만 있다고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네 가지의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네 가지의 세계는 욕계 악처, 욕계 선처, 색계, 무색계입니다.
생명이 사는 이 세계는 모두 31개입니다.
이 세계는 윤회하는 세계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도과를 성취하면 이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가 끝납니다.
이 세계를 출세간계라고 말합니다.
이상의 31개의 세계에는 지옥이 있고 천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상에 사는 생명을 천인이라고 하고 천신이라고도 합니다.
사악도는 고통만 있고 행복이 없으며 수명은 정해지지 않고 업대로 삽니다.
천상에는 행복이 있고 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과 행복을 함께 경험할 수 있어, 바로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가 인간에서만 나옵니다.
인간도 업대로 살기 때문에 수명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31개의 세계에서 주목할 것은 귀신의 세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귀를 중국에서는 귀신이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귀신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귀신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이것을 표상작용이라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바른 상태가 아니거나 특별한 경우에 매우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환청과 환시를 통해서 이런 현상들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표상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보았다면 본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보았다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를 본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야하겠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여러 가지 생명들이 있지만,
모두 각각의 세계에 살고 있고 아귀만 자기 세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들이 우리와 파장이 맞지 않아 교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명들이 우리와 파장이 맞지 않지만 환청과 환시를 통해서 경험하면,
없는 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여서 이것을 실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환시는 자신의 느낌에 의해서 일어난 표상이라고 아셔야 되겠습니다.
이상 네 가지의 세계는 네 가지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따라 세계가 결정되므로 마음과 세계는 분리할 수없는 원인과 결과만 있습니다.
선한 마음이면 선한 세계에 태어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이면 선하지 못한 세계에 태어납니다.
이것이 모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죽음의 마음과 재생 연결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둘째,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입니다.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은 욕계 악처, 욕계선처, 색계, 무색계의 재생 연결식입니다.
어느 세계에 태어나거나 반드시 새로 태어나는 조건을 만드는 재생 연결식이 있어야 하므로
그 세계에 몸이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먼저 죽음의 마음이 그대로 재생 연결식으로 전해져서 태어나는 세계가 결정되고,
다음에 태어나는 세계에 몸이 만들어집니다.
재생 연결식은,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면 죽음의 마음에 담긴 종자가,
다음 마음인 재생 연결식으로 전해져서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일어나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고 새로운 생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마음의 상태에서는 아직 몸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재생 연결식 뒤에 재생 연결식의 상태에 따라 새로 태어나는 세계와
여러 가지의 기능들이 만들어 집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서 태어나는 몸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재생 연결식은 즉시 사라집니다.
그런 뒤에 잠재의식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재생 연결식은 일생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12연기에서 세 번째, 행(行)을 원인으로 식(識)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식(識)이 바로 재생 연결식입니다.
그리고 식(識)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이때의 정신과 물질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식과 정신과 물질을 모두 포함하여 오온이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욕계 악처, 욕계 선처, 색계, 무색계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재생 연결식도 이상 네 개의 세계에서 태어나는 최초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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