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몸을 알아차릴 때는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알아차리고
마음을 알아차릴 때도 마음과 마음을 분리해서 알아차립니다.
일하는 마음이 몸이 되었거나 마음이 되었거나
하나가 되어서 보지 말고 분리해서 객관성을 가지고 주시해야 합니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프지 말아야하며,
마음이 아플 때도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일과 그것을 주시하는 마음도 역시 분리해서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자신은 단지 그것을 지켜보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세상의 일과 자신이 지켜보는 것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다음은 좌선을 하는 수행방법입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와 좌선을 계속할 때와 좌선이 끝났을 때
이것들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좌선을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수행을 합니다.
몸에 긴장을 풀고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십시오.
두 눈을 감는 것은 눈으로 모양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눈을 감으면 현상계가 아닌 전혀 새로운 정신세계가 열립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모든 일은 마음이 합니다.
그래서 아는 마음만 문을 열어놓고
나머지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의 문을 닫아야 합니다.
단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마음이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려야 그간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으로 보지 않게 되며
그래서 대상의 진실한 실재를 알 수가 있습니다.
턱은 약간 안쪽으로 당기십시오.
장시간 턱을 들면 머리나 어깨가 아픕니다.
허리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펴십시오.
허리를 너무 곧게 세우면 긴장이 되어서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손은 힘을 빼고 무릎 위에 편안하게 놓으십시오.
이때 주먹을 쥐거나 손가락에 힘을 주지 마십시오.
어떤 자세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연스러운 자세가 좋습니다.
다리는 반가부좌, 결가부좌, 평좌 등 어떤 자세나 좋습니다.
처음에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오른발, 왼발을 포개지 않고
안과 밖으로 가지런히 놓고 당겨서 앉습니다.
이것을 평좌라고 합니다.
만약 오른 쪽이나 왼쪽의 무릎이 너무 많이 들려 있으면
수건이나 방석으로 무릎을 받쳐주십시오.
무릎이 오래 들려 있으면 통증이 생겨서 수행을 계속하기가 어렵습니다.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좋지 않으면
의자에 앉거나 벽에 허리를 기대고 앉으셔도 됩니다.
누구나 수행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상황에 맞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좋아지기 위해서 하는 수행으로 인해 병을 얻는다면,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세를 가다듬은 다음에 제일 먼저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무엇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시작할 때 있는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좌선을 시작하고 마음이 즉시 몸으로 가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 보다
일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일은 마음이 하므로 처음에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일하는 일꾼의 마음의 상태가 바르지 못하면 바르게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어떤 마음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아무런 마음도 느낄 수 없으면 현재를 지켜보고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마음을 알아차리면 수행을 잘하려고 하는 바라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으며
화를 내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 들뜬 마음, 의심하는 마음,
게으른 마음, 하기 싫어하는 마음 등등 여러 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는 단지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을 알면 됩니다.
이때 이 마음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이것은 나의 마음이 아니고 단지 이 순간에 있는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 있거나 나중에는 이것을 지켜보는 마음만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려야 나중에 무아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일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않고서는 가장 중요한 법인 무아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처럼 새로 일어난 마음이 현재 있는 마음을 알아차린 다음에
마음이 몸으로 가서 일을 시작합니다.
먼저 눈꺼풀이 닿아 있는 것을 잠시 알아차리십시오.
눈꺼풀로 마음을 보낼 때는 마음을 공손하게 모아서 눈꺼풀을 겨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 마음을 눈꺼풀에 잠시 머물게 하여 마음을 순화시켜야 합니다.
처음부터 호흡을 선택하여 붙잡으려하면 마음이 달아나버립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볍게 눈꺼풀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눈꺼풀에 잠시 머물게 하는 것은 마음의 특성을 배려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은 잠시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일어나서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특성입니다.
이런 마음의 특성을 헤아려서 잠시 눈에 머물게 하여 마음을 순화시켜야 합니다.
마음을 몸에 머물게 하는 것은
말뚝에 소를 묶어놓고 멀리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몸에 묶어두지 않으면 마음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가서 이것저것을 참견합니다.
때로는 과거나 미래로 가서 실재가 아닌 것을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
그리고 온갖 번뇌를 스스로 일으킵니다.
그래서 바람 같은 마음을 현재에 붙들어두기 위해서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실 실재하는 진실은 오직 현재의 몸과 마음에만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현재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이 몸을 알아차리면 몸이 가지고 있는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을 알아차려서 얻는 지혜는 2차적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하는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생마와 같은 마음이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것을
한 곳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새로운 습관을 길들이는 과정입니다.
눈꺼풀을 알아차릴 때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표상을 보는 것입니다.
표상은 대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몸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눈꺼풀의 느낌을 알아차리라고 하면 특별한 느낌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의 느낌은 알고 있는 것이 느낌이므로 특별한 느낌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눈꺼풀은 부르기 위한 명칭입니다.
그래서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 바로 느낌입니다.
눈꺼풀이나 다음에 알아차릴 대상인 입술이나 손이나 엉덩이는 모두
부르기 위한 명칭에 불과한 것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관념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실재하는 느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언제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눈꺼풀의 느낌은 따뜻함, 진동, 가벼움, 무거움, 어두움, 빛 등등이 있습니다.
이때 어떤 느낌이 되었거나 하나를 선택하여 조용히 지켜봐야 합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도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단순하게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차츰 조건이 성숙되면 지혜는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 매우 훌륭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도 조급해 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을 시작하여 잘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렇게 있는 현상을 받아들여야 수행이 잘됩니다.
수행은 특별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잘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행을 제일 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느낌은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의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수행이 발전하면 생기는 지혜이므로 처음 단계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행은 나타나지 않는 지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혜는 나타날 때가 되면 스스로 나타나므로
지혜를 얻으려고 수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무상, 고, 무아를 입으로 아무리 외워도 법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외우면 지혜보다 단지 집중의 효과가 있을 뿐입니다.
단지 알아차리면 된다는 말은 정신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뜻을 가진 말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렇게 잠시 눈꺼풀에 마음을 머물게 한 뒤에 다음 과정으로 마음을 입술로 보냅니다.
입술을 알아차릴 때도 눈꺼풀을 알아차리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알아차립니다.
입술에도 여러 가지의 느낌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그냥 입술에 머물게 하는 것도 훌륭한 수행입니다.
그러다 차츰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입술의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입술의 느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느낌입니다.
맨 느낌은 덤덤하기 때문에 느낌인지 알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있는 것을 아는 것이 느낌을 아는 것입니다.
맨 느낌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부딪혔을 때
좋거나 싫은 느낌으로 반응하지 않은 느낌을 말합니다.
그래서 맨 느낌은 아직 반응하지 않은 초기의 순수한 느낌입니다.
입술의 느낌은 덤덤한 것 외에 따뜻함, 진동, 가벼움, 무거움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확장되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동시에 여러 가지로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의 느낌에 마음을 기울여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러 가지의 느낌을 동시에 알아차릴 때는 마음이 집중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기울여서 하나의 느낌을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잠시 입술을 알아차린 뒤에 다음 과정으로 손이 닿아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손이 닿아있는 느낌이란 그냥 손이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손을 알아차릴 때도 눈꺼풀과 입술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이 동일한 방법으로 알아차립니다.
손에는 매우 미세한 느낌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세하게 살펴보면 끊임없이 진동이 일어납니다.
사실은 이것들이 모두 변하고 있는 무상이지만 처음에는 그냥 진동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함, 무거움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좌선 중에 손에 힘을 주거나 주먹을 쥐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손에 특별한 모양을 만들지 말고
그냥 편하게 무릎 위에 손을 두어야 합니다.
양 쪽에 엄지손가락을 맞닿게 한다거나 손 모양을 둥그렇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어떤 바람도 없이 단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손의 느낌을 잠시 알아차린 뒤에 마음을 엉덩이로 보내서
엉덩이가 바닥에 닿아 있는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때의 느낌은 무거움, 단단함, 딱딱함, 진동 등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수행자들은 ‘앉음’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릴 때도 다른 대상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알아차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미얀마의 마하시 선원에서는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린 뒤에 ‘쉼’이 길어질 때는 ‘앉음’을 합니다.
이때의 ‘앉음’이 엉덩이가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쉼이 더 길어지면 ‘앉음과 함께 ‘닿음’을 합니다.
이때의 닿음은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의 일어남, 꺼짐을 하다가 다음 단계로 일어남, 꺼짐, 앉음을 합니다.
그리고도 쉼의 틈이 생길 때는 일어남, 꺼짐, 앉음,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호흡과 몸의 느낌을 동시에 알아차립니다.
이것은 ‘마하시’만의 독특한 수행방법이므로
모든 수행자들이 이 수행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의 방법은 매우 많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거나 모두 바른 스승 밑에서 배운 수행은 바른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초기불교 > 붓다의수행법·위빠사나·묘원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11 (0) | 2010.12.27 |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10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08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07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06 (0) | 2010.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