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지혜로 아는 것이 다릅니다.
지식은 외워서 알거나 생각으로 아는 것이고
지혜는 실천을 통하여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지식은 향기가 없는 조화와 같으며 지혜는 향기가 있는 꽃과 같습니다.
지식은 알지만 생각으로 아는 것이라서 끊을 수 없지만
지혜는 통찰체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끊어버리게 됩니다.
지식도 없는 자는 무명 속에서 자는 자이며
지식만 있는 자는 서가에 묻혀 생각으로 사는 자이고
지혜를 가진 자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자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생각에만 그치지 말고
직접 실천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 시기는 다음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계속해서 성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애로우면 인색하지 않고 인색하면 자애롭지 못합니다.
나누어 갖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성공을 숨기는 마음은
결코 선한 이들의 표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항상 스스로를 움츠리게 하여
스스로를 속박하기 때문에 쓰디쓰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색한 마음이 일어나면 즉시 인색한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가슴으로 와서 인색한 마음이 남긴 느낌을 주시해야 합니다.
이때 인색한 마음을 없애려고 해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단지 계속해서 인색한 마음이 있는지 알아차리면
이것이 삭막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언젠가 스스로 풍요로운 자애를 찾아서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냄과 함께 있는 후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후회는 성냄과 함께 일어나는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후회는 선하지 못한 행위를 했거나,
선한 행위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일 때
성내는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후회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이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에 대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걱정을 하고, 안절부절 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껴 상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후회는 뉘우치고 한탄한다는 뜻으로 회한(悔恨)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후회는 항상 들뜸과 함께 있습니다.
주석서에서는 후회를 3가지로 나누어서 말합니다.
첫째, 마음의 작용 52가지 중에서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을 말할 때
성냄과 함께 있는 후회입니다. 이때의 후회가 바로 불선업입니다.
논장에서 말하는 후회는 들뜸과 함께 있는 첫 번째 후회를 말합니다.
둘째, 점잖지 못한 행동을 하여 계면 적어 하는 후회입니다.
무심히 한 사소한 행동으로 인하여 얼굴을 붉힐 때 이때 후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불선업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셋째, 계율에 입각해서 선업인지 불선업인지 잘 구분할 수 없는
애매한 행위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입니다.
이때의 후회도 불선업에 속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후회는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이러한 후회는 해탈을 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후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후회를 하지 말고 후회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과를 성취하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후회는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탐욕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회는 성내는 마음과 함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후회를 불선행이라고 합니다.
후회는 참회와는 다릅니다.
이루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것과 자기가 한 행위를 겸허하게 참회하는 것은 다릅니다.
참회는 믿음과 알아차림과 양심과 수치심과 탐욕 없음과 성냄 없음과
중립적인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서 선행에 속하지만
이것도 반대가 되는 후회는 불선행에 속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미 지난 일을 한탄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수행자는 언제나 현재의 것을 알아차려야합니다.
과오를 저지르고 그것을 혐오한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후회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가슴으로 가서
후회한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느낌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수행입니다.
그러고도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우면 진심으로 참회하면 됩니다.
그런 뒤에 알아차릴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여 몸과 마음을 지켜보고 고요함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이미 형성되었다가 사라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새로운 업을 생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실 후회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참회입니다.
그러므로 참회하기 위해서 달리 방편을 쓸 것이 없습니다.
후회하고 있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진정한 참회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후회하고 살았지만 개선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후회하고도 또 똑 같은 행위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후회에 대한 효용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거나,
한 것을 한탄하는 것은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라서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은 생각입니다.
단 한순간이라고 진실한 알아차림이 있으면
지혜가 나서 사물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조금씩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이익입니다.
후회를 한 뒤에 다시 후회하는 행위를 거듭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을 노예근성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참회는 잘못한 것을 뉘우치지만
불선업의 후회는 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냄은 2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 괴로운 느낌에 따라 분노와 함께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후회입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후회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찾아온 손님입니다.
이런 후회는 습관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런 후회가 일어날 때 후회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자신의 축적된 성향을 알아야 합니다.
축적된 성향은 바꿀 수가 없으므로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둘째, 괴로운 느낌에 따라 분노와 함께 유발되어 일어나는 후회입니다.
이 후회는 내부의 자발적인 후회가 아니고 외부로부터 오는 일로 인해서 유발된 후회입니다.
이런 후회는 외부로부터 찾아온 손님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서 생긴 문제로 인해 후회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입속에 도끼가 생겨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말로 자신을 찍는다.
비난받아야할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받아야할 사람을 비난하는 자는
자기 입으로 악업을 쌓는다.
그렇게 불선업을 저지르는 자에게는 복이 없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의 가르침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번뇌에서 벗어나야 행복한 것이며 그렇게 살기 위해서 계율을 지키고
고요함을 얻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지혜의 과정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화를 내는 것으로 지혜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누가 화를 낸다면 이는 탐욕으로 인한 것이며,
이러한 탐욕은 어리석음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내는 것은 지혜를 측정하는 잣대라고 아셔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를 욕하고 나를 해쳤으며,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이와 같은 생각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자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저 사람은 나를 욕하고 나를 해쳤으며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이와 같은 생각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자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어느 때나 분노의 감정은 분노로서 가라앉지 않고
분노를 하지 않음으로써 가라앉으니 이것이 만고의 교훈이다.”
그렇습니다.
성냄과 혐오는 단계적으로 제거됩니다.
알아차린다고 해서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고,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에는 화가 소멸됩니다.
그러나 오래 동안 습관적으로 행해온 화가 알아차린다고 해서 완전하게 소멸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서 먼저 수다원의 도과를 성취해야합니다.
그렇다고 수다원에서 성냄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수다원의 도과에 이른 수행자도 괴로운 느낌으로 인해서 화를 냅니다.
그러나 화를 낸 뒤에 알아차려서 맨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수다원이 되면 범부가 내는 화보다도 약하며
화를 냈다가도 즉시 맨 느낌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수다원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일곱 생 이내에 아라한이 되어 윤회가 끝납니다.
다음으로 사다함의 도과를 성취해도 역시 화를 냅니다.
그러나 수다원의 화보다도 약합니다.
사다함은 수다원의 도와 과의 지혜보다 깊기 때문에
무상, 고, 무아를 좀 더 자세하게 보아 탐욕을 일으키는 것이 적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도 약합니다.
그러므로 화를 낸 뒤에도 맨 느낌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횟수가 빠릅니다.
그래서 사다함도 인간으로 한 번 더 태어나서 아라한이 되어 윤회가 끝납니다.
다음으로 아나함이 되면 성냄과 혐오가 완전하게 제거 되어
더 이상 잠재적인 성냄과 혐오의 성향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세한 것이 남아있어서 천상의 정거천에 태어나서
그곳에서 아라한의 도과를 성취합니다.
천상에서는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기 때문에 수행을 할 수가 없지만
유일하게 정거천에서만 아나함이 수행을 해서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거천의 수명도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합니다.
정거천은 네 곳이 있는데 그곳의 수명은 각각 천 대겁으로부터 만 육천 대겁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아나함이 최선은 아닙니다.
금생에 아라한이 되어서 즉시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의 자유를 얻는 것이 누구에게나 지상과제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아라한이 되면 모든 번뇌가 완전하게 소멸되어
오직 원인과 결과가 없는 무인작용심으로 살기 때문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최고의 지혜를 얻은 것조차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걸림이 없습니다.
이 단계가 위빠사나 수행자가 이르고자 하는 최고의 단계이며 마지막 과정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은 계셔도 부처님을 얻은 자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아는 자라는 말인데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상, 고, 무아를 알아서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부처는 자기 자신이 얻은 지혜 속에도 빠져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은,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서 탐욕을 갖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까지 성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성냄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남에게 화를 내는 것 대신에
더 많은 자애와 연민을 갖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먼저 낮은 단계의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성냄의 정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야 하며,
이러한 성냄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수행자여러분들은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려서
가장 천박한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지고의 행복인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화가 났을 때 알아차리는 수행 방법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하나,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둘,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셋, 화가 난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립니다.
넷, 화가 난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느낌을 가슴에서 알아차립니다.
이때 반드시 가슴의 느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만약 머리의 느낌이 강하다면 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화가 난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몸의 어느 곳에 일어난 느낌을 주시하는 것입니다.
다섯, 거친 느낌, 중간 느낌, 미세한 느낌을 알아차린 뒤에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여섯째 이렇게 느낌이 사라지고 느낌이 사라진 뒤에 호흡이 있고
만약 그 호흡이 사라졌다면 다음에는 가슴에 있는 미세한 맥박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해서 화가 났을 때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고
반드시 화가 난 마음을 보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가슴의 느낌을 주시하면
점진적으로 화가 약화되며 온전한 고요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분들이 이런 수행을 통해서
성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초기불교 > 붓다의수행법·위빠사나·묘원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32 (0) | 2010.12.27 |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31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29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28 (0) | 2010.12.27 |
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27 (0) | 2010.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