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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77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2:58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사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알면 지혜가 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혜가 나고서도 내가 괴롭다고 알기 때문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아의 지혜가 나지 않는 한 완전한 지혜가 아닙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이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이 나의 소유가 아니고 단지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어리석음이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고 이것이 내가 아니라고 알면

다시 태어나는 업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것이라고 집착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대념처경의 사성제 중에서 도성제에 관하여 경전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넷째,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다시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道)이니,

,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견인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사유인가?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사유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어인가?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업인가?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업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명인가?

성스러운 제자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살아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명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이 일어나도록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계발하기 위해서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정진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념인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림으로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히고,

내적으로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로 지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더 이상 없으며,

마음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뿐만 아니라,

희열까지 사라져 평온하게 머물며,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몸과 마음에서 행복을 경험하며 지낸다.

성자들이 평온하게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세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도 없앴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알아차림이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라고 한다.”

이상이 대념처경에 있는 도성제의 내용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도성제는 열반에 이르는 도의 길인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바른 길로 계정혜를 의미합니다.

 

팔정도를 중도라고 하며 위빠사나 수행이라고도 합니다.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은 두 가지 극단을 배제한 균형이 갖추어진 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성을 나약하게 하는 극단적 고행과,

자신의 도덕적 품성을 퇴보시키는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팔정도는 모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8정도에 입각해서 살아가야합니다.

특히 부처님의 이름으로, 불교도로써 극단적 고행을 하거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행태든지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극단적 고행을 한다면

본인의 품성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괴롭힙니다.

 

우리는 수행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극단적 고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팔정도의 여덟 가지 바른 길은 지혜가 발전해 나가듯이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팔정도는 여덟 가닥의 실을 모아서 하나로 줄로 엮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계와 정과 혜가 항상 함께 작용하는 것입니다.

 

팔정도의 순서는 계정혜이기 때문에

계에 속하는 정어, 정업, 정명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팔정도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정견입니다.

수행자의 궁극의 목표가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이상을 삼기 위해서 바른 지혜를 제일 앞에 배열하였습니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로 시작하고 바른 견해로 계속하고 바른 견해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견이 나머지 팔정도를 모두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8정도의 시작은 정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로 고집멸도 사성제를 명확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견해는 최고의 수승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괴로움이 있다는 것과,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라는 것과,

괴로움이 소멸한다는 것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팔정도라는 것을

아는 지혜입니다.

 

정견은 사성제를 통찰하는 것 외에도

행위를 한 자가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는 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자기가 지은 업의 주인이자 자기 업의 상속자다.

그들 각자는 자기 업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며 자기 업에 매여 있고 자기 업으로 지탱한다.

선이나 악이나 간에 어떤 업이든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수행자 여러분!

바른 견해는 존재하는 것들의 특성인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존재하는 것들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하고, 일반적 특성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바른 견해를 가질 때라야 비로소 갈애가 소멸될 수 있습니다.

 

정사유는 바른 의도입니다.

그리고 생각, 목적, 계획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정사유는 3가지인데

욕심으로부터 벗어난 사유입니다.

세속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집착과 이기심과

자기 소유와 반대되는 이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냄이 없는 사유는 미움, 악의, 혐오를 갖기 않고

이것과 반대가 되는 자애, 선의 상냥함을 갖는 것입니다.

해치지 않으려는 사유는 잔인하지 않고 무자비하지 않으며

해를 끼치지 않고 동정심을 갖는 것입니다.

 

청정도론에서는 정사유를 ‘열반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행을 하려면 대상과 아는 마음만 있는데

이때 마음을 대상에 기울이는 것이 정사유입니다.

이것을 1선정에서는 일으킨 생각이라고도 합니다.

 

정사유로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면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품을 알 수 있어서 지혜가 납니다.

그러므로 대상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은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 의해 지혜가 성숙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지혜에 속합니다.

이상 정견과 정사유가 지혜에 속하는 팔정도입니다.

 

정어는 바른 말입니다.

정어는 4가지를 삼가는 것입니다.

거짓말, 이간질, 욕설,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남을 비방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말을 해서 사람들을 갈라서게 합니다.

그리고 거친 말로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때로는 유익하지 않은 해로운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삼가는 것이 정어입니다.

 

정업은 바른 행위입니다.

정업은 3가지를 삼가는 것입니다.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입니다.

이상의 행위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기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불선업이며 번뇌의 시작입니다.

 

다른 생명을 해치면 자신도 그 과보를 받아서

병에 걸리거나 수명이 짧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집니다.

 

도둑질은 주지 않는 물건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지 않는 물건을 취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그리고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도 도둑질에 속합니다.

 

삿된 음행은 자신의 감각적 욕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계율과 행복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도 자신이 저지른 과보를 받아서 괴로움을 겪습니다.

 

정명은 바른 직업을 갖는 것입니다.

바른 직업은 무기거래, 생명체 거래, 도살업, 독약거래,

술이나 마약거래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직하게 획득하는 것, 사기, 배신, 점술, 속임수,

고리대금업은 바르지 못한 생계수단입니다.

이 외에도 출가수행자들의 위선적 행위도 잘못된 생활에 속합니다.

 

이상 3가지인 정어, 정업, 정명을 계율에 속하는 팔정도입니다.

이때의 계율은 3가지의 절제를 의미합니다.

절제란 삼가는 것입니다. 절제는 3가지가 있습니다.

때때로 절제하는 것,

계율에 의해 절제하는 것,

완전한 소멸에 의해 절제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는 절제는 특별하게 계율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자신의 처지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절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때로 절제하는 것입니다.

 

계율에 의해서 절제하는 것은

비구나 비구니는 수계를 받을 때

계율을 지키고자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절제하는 것입니다.

 

재가 수행자는 오계를 받았을 때 계를 받은 것을 생각하고 절제를 합니다.

사원에서 수행을 할 때는 8계를 받고 하기 때문에 절제를 합니다.

이렇게 절제하는 것을 계율에 의한 절제라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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