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30

通達無我法者 2011. 1. 3. 22:16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오늘도 지난시간에 이어서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알아차림에 대한 총 정리를 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수행자가 알아차려야할 기본적인 사항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교훈을 어기지 않고

알아차림의 수행법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는 계속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행동이 필요한 때는 즉각 움직이지 말고,

우선 움직이지 않은 채 고요하게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왜냐하면 동작을 하기 전에 보다 강한 알아차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움직이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움직임에 전심전력으로 주의 깊게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잔치나 축제의 위험한 경계 등등에 처했을 때라도

몸을 제어하여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행주좌와에서 사념처인 신수심법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세에 빈틈없이 기민하게 알아차림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다음엔 대화를 할 때 지나친 즐거움, 오만, 흥분, 편견 등으로

지나친 몸짓이나 보기 흉한 꼴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다음에는 알아차림을 하여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하며,

너무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무례한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는 만약 교양이 없는 사람을 만나는 역경계에 처할 때는

자신의 생각이 상대방의 마음에 잘 이해되고 수용되도록

마음을 가다듬어 알아차리고 말을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마음은 발정기에 있는 코끼리와 같이 대상을 찾아 이리저리 날뛰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향해 항상 내적인 고요함의 말뚝에 꽉 매어 두어야 합니다.

떠다니는 마음을 내적 고요함의 말뚝에 꽉 매달아두는 것은

대상을 겨냥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에는 매순간 자신의 마음상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음에는 군중이 많이 운집한 가운데서도

다른 행동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집요한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위의 설명을 기억하고 실천해야합니다.

이상이 위빠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지켜야할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다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바라지 말고, 얻으려고 하지 말고, 이루려고 하지 말고 알아차려야합니다.  

없애려고 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화를 내지 말고 알아차려야합니다.

 

흐리멍텅하게 하지 말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졸릴 때는 졸음과 싸우지 말고,

몸과 마음이 졸음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변하는지 알아차려야합니다.


하기 싫을 때는 하기 싫은 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좋아할 때도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따지지 말고, 분석하지 말고, 어떤 차별도 일으키지 말고, 그냥 알아차려야합니다.

복잡하게 알아차리지 않고, 간단하고 명료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없는 것을 알아차리지 말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즐겁고 편안하고 고요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알아차릴 대상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되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차려야합니다. 

지나치게 힘을 주거나 너무 집중을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고

부드럽고 가볍게 알아차려야합니다. 


꼭 알아야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야합니다.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만 알아차리되 확실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조급함이나 무거움이 있지 않게 하고, 예리하고 철저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너무 강하게도 너무 약하게도 하지 말고 강약의 조화를 이루어서 알아차려야합니다. 

과거나 미래를 알아차리지 말고 언제나 현재를 알아차려야합니다. 


주의력 있게 집중을 하되 깊게 하지 말고

순간순간의 찰나를 연속적으로 알아차려야합니다. 

여러 가지로 옮겨 다니지 말고 하나의 대상으로 하되,

다른 것이 나타나면 그 대상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알아차릴 대상은 언제나 자신의 몸과 마음임을 잊지 않고

항상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만약 마음이 밖으로 나갔을 때는 나간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언제나 결론을 내리지 말고 변화하는 대상을 알아차리십시오.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면 결론을 내린 것을 다시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처음에는 모양이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다음에는 성품을 알아차려야합니다.

다시 성품의 변화를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로 알아차려야합니다. 

모든 대상은 무상과 고 무아임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지혜가 나면 지혜가 난 것을 알고,

지혜 때문에 좋아했으면 좋아한 것을 알아차려야합니다.


모든 대상은 무엇이나 오직 알아차릴 대상일 뿐입니다.

알아차림은 항상 마음을 새로 내서 알아차려야합니다.

알아차림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알아차리기 위해서 마음을 항상 새로 내야 됩니다.

이것을 기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려야 할 여러 가지 대상 중에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상을 알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대상을 일으킨 마음을 알아차리고,

대상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화가 난 것을 아는 것을 알아차려야하고.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화가 난 것을 아는 것과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다릅니다.

이때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심념처 수행입니다.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항상 뿌리를 알아차리는 것이 되므로,

대상의 근본에 접근하는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화를 낼 때 화를 낸 마음을 알아차리면

화를 낸 마음의 성품인 빠라마타, 그 실재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화를 낸 마음의 성품이 탐심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나 그것을 일으킨 것은 마음이고,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원인을 아는 것이 됩니다.

마음이 마음을 알아차리면 성품을 아는 것이므로 대상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대를 미워하거나 상대로 인해 어떤 느낌이 일어나면

상대를 보지 말고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가슴으로 와서 콩닥거리는 느낌을 지켜보아야합니다.

이때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면 더욱 격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슴에 있는 이 느낌을 없애려하지 말고 그냥 알아차려야합니다.


그러나 상대를 미워하는 힘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상대에게로 다시 갔다면

이때는 상대를 보지 말고 상대의 마음을 보아야합니다.

그런 뒤에 상대의 마음이 일으킨 축적된 성향을 보아야합니다.

상대의 행위는 그 사람이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축적된 성향이 일으킨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의 잠재적 성향을 지켜보아야 미워할 사람이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항상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로 인해 마음이 들떠있거나

아니면 멍청한 상태로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어리석음이란 좋아하는 것을 집착하고, 미워하는 것을 집착하고,

어리석은 것을 집착하여 번뇌를 키웁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좋아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미워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리석은 것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잘못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단지 알아차리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

쉽게 좋아하는 사람이 쉽게 싫어하기도 합니다.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싫어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같은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한쪽으로 치우치면 반드시 다른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마음이란 한쪽으로 더 깊게 치우치면 반드시 다른 한쪽으로 더 깊게 치우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어느 쪽이냐에 상관없이 치우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균형이 깨지면 고통이 오고, 알아차려서 균형이 잡히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

우리가 안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관념을 아는 것보다 실재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양에 걸려서 시비를 하지만,

아는 사람은 대상의 성품을 보아 시비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란 특별한 능력을 갖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서 내가 아니라는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마음은 있지만, 내 마음이 아니고,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조건에 의한 마음이라고 알아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거나 극단적인 고행을 하지 않는

중도의 마음을 가질 때만이 일어납니다.

중도의 마음이 8정도며 8정도가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가 일어나지 않고,

느낌을 원인으로 지혜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서만이 번뇌가 소멸됩니다.

이것이 깨달음이며 이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나

세상의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무아입니다.


여러분!

법을 얻는 조건은 현재 선한 마음이 있어야하며,

선업의 과보가 충분해야합니다. 이것을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법이 있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아직 선업의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행위로 이어지며, 그 행위로 인해 생긴 결과가 업의 결과물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도 업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입니다.

원인과 결과물인 마음과 몸은 다시 새로운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를 낳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삶입니다.


과거에 조건이 형성되어 현재의 마음과 몸이 되었는데,

다시 과거의 조건을 되풀이하면 또다시 현재와 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수행자의 알아차림은 항상 새로운 선한 원인을 만들며,

이로 인하여 나중에 원인과 결과에서 조차도 벗어날 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수행의 체험은 높은 단계를 말하면서 하는 행동이 낮은 단계일 때는

실재가 아닌 생각으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실재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법을 얻는 조건은 현재의 선한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있어 모든 행위를 합니다,

행위는 업이며 업은 과보를 낳습니다.

선업은 선한 과보를 낳으며 불선업은 불선의 과보를 낳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

안심하십시오. 수행을 하다가 죽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두려울 때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합니다.

알아차림이 선하고 행복한 것은

알아차리는 순간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불선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불평하지 마십시오.

불평은 세치 혀로 도끼를 찍는 것인데

가장 먼저 도끼로 찍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알아차림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초기불교 > 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연기와 위빠사나/32  (0) 2011.01.04
12연기와 위빠사나/31  (0) 2011.01.03
12연기와 위빠사나/29  (0) 2011.01.02
12연기와 위빠사나/28  (0) 2011.01.02
12연기와 위빠사나/27  (0) 201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