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54

通達無我法者 2011. 1. 7. 21:09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을 해서 단 한번이라도 진실을 알 수 있다면 이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한 가지를 알면 이미 열 가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 한번이라도 진실을 알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대상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이것은 큰 진전입니다.

단 한번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열 번을 알아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 한번이라도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합니다.

한번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는 것이 매우 쉬워보여도,

사실은 그것이 하나의 작은 완성이라서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완성은 경험과 지혜가 성숙되어 조건이 충족된 것입니다.

집중력을 가지고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끊임없이 알아차리면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완전한 알아차림은 시작이 아니고 하나의 작은 완성입니다.

이처럼 수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임으로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서만의 실재하는 현실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12연기 중에 행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행중에서 지난시간에 이어 선하지 못한 행, 공덕이 되지 않는 행에 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그중에 부처님의 한 제자인 목갈라나 존자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부처의 두 제자 중에 한 분이십니다.

역대 스물다섯 분의 모든 부처님들은 반드시 위대한 두 상수제자를 두었습니다.

그중에 석가모니 부처님도 사리불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를 두 제자로 두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마하 목갈라나라고도 하는데,

라자가하에 꼴리따 마을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나서

마을 이름을 따라 꼴리따라고 불렸습니다.

또 어머니의 이름이 목갈리 또는 목갈리니였기 때문에 목갈라나라고도 불렸습니다.


목갈라나가 태어난 날에 사리풋다도 우빠띳싸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사리풋다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하루는 자신들을 따르는 바라문 젊은이들과 함께

라자가하의 산마루 축제를 보러갔다가

갑자기 삶의 덧없음을 느끼고 함께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리풋다와 함께 불가지론(不可知論)을 펴는

산자야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던 중 사리풋다로부터

앗사지 존자의 연기법의 게송을 전해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리풋다와 함께 승가에 들어와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풋다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를

비구들이 본받아야하는 가장 이상적인 제자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재분별경에서 두 상수제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사리풋다는 아이를 낳는 어머니와 같고,

목갈라나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유모와 같다.

사리풋다는 제자들을 가르쳐 수다원에 들게 하고,

목갈라나는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 올려준다.


목갈라나존자는 사리풋다존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이자 도반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 친분은 부처님의 말년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두 상수제자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로 하여금

승가의 일을 분담하여 보살피도록 하시고

여래가 안 계실 때에는 그들이 승가의 일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긴요한 상황이 생기면

특별한 임무를 두 상수제자에게 부여하시는 일을 자주 하셨습니다.


예컨대, 데와닷타가 웨살리 출신의 갓 출가한 비구들을 꼬드겨 상두산으로 데리고 가자,

부처님께서는 두 상수제자를 보내어 데와닷타가 잠시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500명의 비구들을 설득하여 모두 되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신통력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으뜸이었습니다.

존자는 살아있는 형상을 무한대로 만들 수 있었고,

원하는 어떤 형태로도 변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수미산을 강낭콩처럼 으깨버릴 수도 있었으며

지구를 손가락으로 돗자리처럼 둘둘 감을 수도 있었고

지구를 옹기장이의 물레바퀴처럼 돌릴 수도 있었으며

지구를 펼쳐진 우산처럼 수미산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위층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아래층에서 잡담을 하면서 노닥거리는 비구들을

따끔히 혼내주라는 세존의 명을 받아서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서

엄지발가락 끝으로 강당을 흔들어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때 목갈라나 존자는 제석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지를 확인하러 삼십삼천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제석은 자신의 영화에만 도취되어 너무 자만하고 있었음으로

그에게 무상함을 일깨워주고자 손가락으로 제석의 웨자얀따 궁전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또한 부처님이 바까 범천의 오만함을 꺾는데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직접 바까 범천의 처소로 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석서에 따르면 목갈라나의 신통의 극치는

등룡 난도빠난다를 조복시킨 일이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별도의 선정에 들지 않고서도

아귀나 다른 중생계의 존재들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지혜에 있어서도 사리풋다 존자 다음에 가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라방가 본생경에 따르면,

존자는 신통력으로 종종 우땃사 지역과 천상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외도의 신자들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고,

부처님의 신자들과 천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이렇게 되자 세상 사람들이 점점 외도를 멀리 하고 부처님 주위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나형 외도들은

사마나 뿟따카라는 도적두목에게 천금을 주고

목갈라나 존자를 죽이라고 사주를 했습니다.


도적들은 존자를 죽이려고 갈라실라로 갔지만,

멀리서 그들을 본 존자는 하늘을 날아 화를 면하였습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존자는 신통력으로 자리를 피해 살 수 있었지만,

7일째가 되자 전생에 지은 순후업이 그 과보를 얻을 기회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처럼 신통력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존자가 지었던 순후업은 주석서들에 따르면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먼저 본생경 주석서에 따르면

존자는 과거 전생의 어느 때에 아내의 말을 쫓아 눈먼 부모를 죽이려고

수레에 태워 숲 속으로 부모를 데리고 가서 

도적이 나온 것처럼 꾸며 부모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시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식이 때리는 줄을 모르고

진짜 도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들보고 빨리 피하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 말에 감동한 아들은 원래의 생각을 접고

부모를 도로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법구경 주석서에 따르면 존자는 실제로 숲 속에서 부모를 때려 죽였고,

이 악업으로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업은 오랫동안 그 과보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재속에 불씨처럼 묻혀 있다가 이렇게 존자의 최후의 몸을 붙잡았습니다.


신통제일인 목갈라나 존자가 결국 그를 죽이도록 사주한 사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은 그의 신통력이 다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신통력이 다 소진 되었다는 말은

이미 그가 받아야 할 업의 과보를 피할 수가 없어서

그 과보가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잘못된 행위를 해서 그 행위로 인해서 받는 과보는

언제 어느 때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힐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합당한 조건이 성숙되면 그 과보가 나타나서 그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미 아라한이 된 목련 존자도, 신통제일인 목련 존자도

그 고통의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 할만한 것은

목련존자가 신통의 힘이 다해서 맞아죽는 고통을 겪었을 때에도

그는 이미 아라한이었기 때문에 자기를 때린 사람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온전히 그 과보를 스스로 수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도적들은 존자를 때려 뼈를 부수어 잘게 썬 볏짚처럼 만들어 놓고는

이제 죽었으리라 생각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의식을 회복한 목련존자는

죽기 전에 부처님을 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서진 몸을 신통력으로 한데 묶어

하늘로 솟아올라 공중으로 부처님께 가서 인사를 드리고

이제 자신이 반열반에 들 때가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목련존자에게 마지막 설법을 할 것을 요청하셨고,

이에 목련존자는 여러 기적들을 나투어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실라로 가서 반열반에 들었습니다.


이때 여섯 욕계 천상에서는 대소동이 일어났고,

천인들은 하늘의 꽃, 향료와 백단향 가루와 갖가지 섬 나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다비장 주변 1유순 이내에 꽃비가 내렸습니다.


존자의 다비식은 천신과 인간들의 성대한 공경과 예배 속에서

7일 동안 아주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비식이 모두 끝나고 나자

부처님은 존자의 사리를 잘 수습하여 죽림정사의 탑에 세우게 하셨습니다.


사리풋다 존자는 양력 10월과 11월에 걸쳐있는 까띠까 달 보름날에 입적하셨고,

보름 후에 초승달이 떠오르는 날 목갈라나도 입적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반년 후에 부처님께서도 무여의열반에 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종성경에 따르면 목갈라나 존자의 몸은

푸른 연꽃이나 피고름 색깔을 띠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리랑카에서는 존자가 최근에

과거의 지옥에서 고통 받은 것으로 인해서 후전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석서에 따르면 목갈라나 존자가 마지막 생에 고타마 붓다의 상수제자가 된 것은

1아승지 10만겁 전 아노마다시 부처님 재세 시에

시리왓따나 라는 바라문으로 있을 때 사리풋다 존자의 전신인 사라다와 함께

미래의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고자 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맞은 것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커닝 햄에 의해서 인도의 산치대탑에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의 사리가 들어있는 두 개의 석재 사리함이 발굴되었습니다.


두 존자의 사리 중에 일부가 1950년 10월 20일 미얀마에 전해져서

제 6차 결집의 사적지에 세워진 양곤의 까빠에 파고다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미얀마 까빠에 파고다에 가면 목련존자의 사리와 사리불 존자의 사리를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토록 잘못된 행을 했더라도 바른 선행을 하면

그 잘못된 행의 과보를 받더라도

또 선한 과보를 받는 기회가 반드시 있습니다.


목련존자가 그 예입니다.

전생에 부모님과 관계된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다운 삶을 살았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죽인 그 과보는 피할 수가 없어서

이미 아라한이 된 목련 존자였다 하더라도

부모를 죽인 그 과보는 받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이렇듯 악행의 과보는 우리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미 아라한이 된 자들은

그 악행의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여러분은 스승을 믿습니까?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을 믿습니까?

스승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스승에 대한 가르침은 다른 것입니다.


스승에 대한 믿음은 가르침을 통하여

확신에 찬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 바른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스승은 가르침을 주는 인격체일 뿐입니다.

사실 따라야 하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스승은 관념이고, 실재하는 것은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은 실재하는 것 속에 만 있습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섬으로 삼아야 합니다.

가르침이 아닌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아닌 남을 의지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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