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68

通達無我法者 2011. 1. 11. 21:50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인간이 가진 것은 오직 몸과 마음뿐입니다.

몸과 마음에 문제도 있으며, 답도 함께 있습니다.


수행을 할 때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몸과 마음이 모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원인이 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서는 법의 성품을 볼 수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닌 것은 관념으로써 선정(禪定)의 대상이고

몸과 마음은 실재(實在)하는 것으로써 지혜(智慧)의 대상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념이 아닌

실재(實在)하는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합니다.


왜냐하면 실재하는 것에만 진실이 있으며

실재는 자신의 몸과 마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재라고 하는 대상은 지금 여기에 있어야하며

그리고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것들 이어야합니다.


실재하는 것들은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어서 느낄 수가 있으며,

이 느낌을 통해서만 법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린다고 하여

남에 대해 무관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신에 대한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다음으로 남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서

바른 견해를 가질 때만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면 과거와 미래로 가지 않아서

괴로움과 두려움이 제거될 수가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은

바로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여러분!

오늘은 육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2연기의 시작은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납니다.

다시 행을 원인으로 재생연결식이 일어납니다.

재생연결식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납니다.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6가지 감각기관인 육입이 일어납니다.

바로 오늘 말씀드릴 육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납니다.


수행자 여러분!

육입인 여섯 가지 감각장소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입니다.

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에 여섯 가지 감각대상이 부딪치는데

그것은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입니다.


감각장소 여섯 가지와 감각대상 여섯 가지를 합쳐서 십이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눈이 형상과 접촉하고, 귀가 소리와 접촉하고,

코가 냄새와 접촉하고, 혀가 맛과 접촉하고,

몸이 감촉과 접촉하고, 마음이 마음의 대상과 접촉합니다.


이때 이러한 접촉을 통해서 아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눈이 형상과 접촉하여 다시 아는 마음과 접촉합니다.

귀가 소리와 접촉하여 다시 아는 마음과 접촉합니다.

코가 냄새와 접촉하여 다시 아는 마음과 접촉합니다.

혀가 맛과 접촉하여 다시 아는 마음과 접촉합니다.

몸이 감촉과 접촉하여 다시 아는 마음과 접촉합니다.

마음이 마음의 대상과 접촉하여 다시 아는 마음과 접촉합니다.


이렇게 육입이라는 감각기관이 육경이라는 감각 대상과 부딪치고,

다시 육식이라는 여섯 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통 털어서 접촉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접촉이라고 할 때는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치는 두 가지만을 말하지 않고,

감각대상에 부딪쳐서 여섯 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난 것,

이 세 가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접촉이라고 말합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접촉한 것을 열두 가지 장소라고해서 12처라고 하며

여기에 다시 여섯 가지 아는 마음을 합쳐서 18계라고 말합니다.

이 18계가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자신의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이 세계관입니다.


불교는 결코 우주의 세계관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괴로움을 해결하는데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있고,

이 괴로움을 해결하려면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찰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괴롭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서 번뇌를 해결하는 것이 해탈의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고

그래서 열반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과 부딪쳐서

여섯 가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로 살고, 또 그리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한다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문(門)에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치지 않으면 연기가 회전하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쳤을 때, 단지 아는 마음만 있고

단지 느낌만 있는 상태이면 연기가 회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자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門) 중에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을 닫고,

오직 아는 마음의 문만 열어놓고 대상과 접촉하면

이 순간 연기가 회전하지 않고, 비로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마시사야도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감각 접촉은 감지하기 어려운 정신적 생명의 현상이지만,

대상이 마음에 확실한 충격을 주었을 때에는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학대받고 있는 것을 보면 보는 순간 충격을 받습니다.

나무위에 어떤 사람이 목매어 죽은 것을 보면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리고 유령과 비슷한 것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질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 강력한 인상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의 감각대상과의 부딪침인 감각 접촉이 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감각 접촉은 때때로 매우 폭발적이며, 폭발적 감정과 욕정 분노 등을 표출 하게합니다.


주석서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대 스리랑카에 부타카마니왕 때의 한 젊은 비구가 소녀를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소녀도 비구를 쳐다보았고 그 둘은 불타는 욕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급기야 죽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장로 비구도 마하나가왕의 왕비를

알아차림 없이 쳐다보았다가 미친 일도 있습니다.


본생경에 따르면 보살은 선인이었는데 공양을 받기위해 왕궁으로 갔습니다.

선인은 신통이 있었기 때문에 날아서 갔는데

선인이 갑자기 나타나자 왕비가 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걸치고 있던 옷이 흘러내렸습니다.

왕비의 매혹적인 몸매는 곧바로 오랫동안 잠재하고 있던 선인의 성욕을 솟구치게 했습니다.

선인은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인은 신통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걸어서 거처로 돌아간 선인은

욕정과 애욕의 불꽃으로 괴로워하며 누워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의 전모를 들은 왕은 언젠가는

이전의 높은 본성을 되찾을 성자의 능력을 확신했기 때문에

선인에게 왕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왕비에게 선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은밀히 지시했습니다.


선인은 왕비를 데리고 왕궁을 떠났습니다.

일단 왕궁에 문을 나오자 왕비는 선인에게

되돌아가서 왕에게 집을 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낡은 집을 받았지만 똥과 오물을 치우기 위한 광주리 및 손도끼를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선인은 몇 번이고 필요한 다른 물건들을 요구하러 왕에게 가야했습니다.


왕비의 요구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느라고 기진맥진했지만,

선인은 아직도 욕정과 애욕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킨 일을 모두 다한 다음에 선인은 좀 쉬려고 왕비 곁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왕비는 선인의 수염을 확 잡아당기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애욕과 욕망을 없애는 것이 목적인 사문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세요!"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선인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명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왕비를 왕에게 돌려준 다음 히말라야의 숲으로 가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신통도 회복하고 죽어서 범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보살과 같이 정신적으로 뛰어난 존재도

번뇌에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인은 전에도 왕비를 우연히 보았겠지만

감정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감각접촉이 강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선인이 며칠동안 욕정과 애욕에 불길에 휩싸이는 고통을 받은 것은

바로 왕비의 육체적인 형상에 대한 분명하고 생생한 감각접촉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본생경에서 시위왕은 사령관의 아내인

움마단띠를 본 다음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움마단띠는 미모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에

왕은 바라문 고관을 보내어 그녀가 왕비의 자질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움마단띠를 보자마자 미모에 매혹되어 자제를 못하고,

그들을 위해 베푼 잔치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라문에 문란한 행동에 넌더리를 낸 움마단띠는 그들을 집밖으로 내 쫒았습니다.

심술이 난 바라문들은 왕비의 자질이 없다고 왕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왕은 움마단띠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고, 그녀는 사령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움마단띠는 자신에 대한 왕의 생각을 바꾸어 놓겠다고 결심하고

왕이 축제기간동안 성내를 시찰할 때 자신의 미모와 매력을 최대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움마단띠에게 반해서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게 된 왕은 움마단띠에 대하여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면서

제석이 은혜를 베풀어서 움마단띠와 하루나 이틀 밤을 같이 잘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게송으로 자신의 맹목적인 열정을 발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각대상과 부딪쳐서 일어나는 충격은 대부분

대상에 의해서 전달되는 감각접촉의 본성에 좌우됩니다.


감각 접촉이 불분명하고 흐릿하면 부드러운 느낌과 갈애를 만들어낼 뿐이지만

분명하고 생생한 감각접촉이 일어난 뒤에는 더 많은 느낌과 갈애 등이 따라옵니다.


감각 접촉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적대적인 대상을 보면 분노하고,

무서운 대상을 보면 두려워합니다.

불쾌한 말은 우리를 짜증나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자아를 북돋게 되면 자만심이 생깁니다.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나

업과 그 과보를 비웃는 가르침을 들으면

그릇된 견해를 갖습니다.


부러운 대상은 부러워하게 만들고

자기만 갖고 싶은 대상은 우리를 인색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이 불선업을 조장하는

감각 접촉의 예에 관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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