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71

通達無我法者 2011. 1. 12. 02:14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느낌은 화살입니다.

느낌은 화살처럼 우리들을 자극하고

우리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느낌으로 압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느끼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에 일어나는 느낌을 맨 느낌이라고 하며,

맨 느낌에서 반응한 느낌이 육체적인 느낌입니다.

육체적인 느낌은 즐거움과 괴로운 느낌으로,

행복과 불행한 느낌이 일어난 것입니다.


육제적인 느낌에서 다시 반응하면 정신적인 느낌이 일어납니다.

정신적인 느낌은 정신적으로 즐거운 느낌과

정신적으로 괴로운 느낌과 덤덤한 느낌입니다.


육체적인 느낌은 아픔의 화살을 한 번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느낌은 아픔의 화살을 두 번 맞은 것입니다.

보통의 슬픔이 비탄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나

즐거움이 감각적 쾌락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갈애가 일어나는 것이

욕망의 느낌이 생겨서 화살을 세 번 맞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적 고통과 갈애가 일어난 것을 모르는

무명의 느낌이 생겨서 화살을 네 번 맞는 것과 같습니다.


갈애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 하나가

이와 같이 거듭 네 개의 화살을 맞혀

우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인간이 파국적인 종말을 맞이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느낌의 발전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느낌이나 느낌이라고 알아차리면

모든 느낌은 단지 대상으로서의 느낌에 머뭅니다.


오늘은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나는 것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 대상과 접촉할 때

여섯 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지난 시간에 이것을 18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때 아는 마음과 함께 느낌도 똑 같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아는 마음은 왕이며 느낌은 신하입니다.

왕과 신하는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마음인 식을 마음이라고 하고,

마음과 함께 있는 수, 상, 행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이 때 마음은 왕이고 그리고 마음의 작용은 신하를 뜻합니다.


눈이 형상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눈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귀가 소리와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귀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코가 냄새와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코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혀가 맛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혀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몸이 감촉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몸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마음의 대상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마음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렇듯 우리가 안다는 것은 모두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느낌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12연기에서 느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연기를 탈출하는 유일한 출구가 바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면 연기가 회전하여

끝없는 윤회계를 떠돌아야 합니다.


그러나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지 않으면

느낌도 소멸하고 갈애도 소멸하여

도과(道果)를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열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도과를 성취하면 연기가 끊어지고,

연기가 끊어지면 윤회가 끊어져서

다시 태어나 괴로움뿐인 생을 받지 않습니다.


느낌의 종류는 마음의 종류만큼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느낌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눕니다.

첫째 즐거운 느낌, 둘째 괴로운 느낌, 셋째 덤덤한 느낌,

이 세 가지를 일차적으로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느낌 외에 다시 느낌을 다섯 가지로 나누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정신적으로 즐거운 느낌,

정신적 괴로운 느낌 그리고 덤덤한 느낌입니다.


이처럼 느낌을 다섯 가지로 나눌 때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은 육체적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감각 기관의 접촉을 통해서 일어난 일차적 느낌이라서

이것을 육체적 느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육체적 느낌이 일어난 뒤에

느낌이 더 강해지면 정신적 느낌으로 발전합니다.


그냥 좋을 때는 육체적 느낌입니다.

그런데 좋아서 죽겠다고 할 때는 정신적 느낌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냥 괴로울 때는 육체적 느낌입니다.

그런데 괴로워서 죽겠다고 할 때는 정신적 느낌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느낌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괴로움을 겪습니다.


이제 수행자는 눈으로 보거나,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할 때

반드시 느낌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감각 기관이 대상과 접촉했을 때

반드시 느낌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냥 알고 있는 맨 느낌의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뿐더러, 느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특별한 느낌을 찾아서도 안 됩니다.


알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도 있고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도 있는 것이므로

특별한 느낌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어떤 느낌을 찾는다면 그 순간 알아차림을 놓치게 되고

그리고 갈애라는 번뇌가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볼 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괴로운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볼 때는

괴로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좋은 것을 대할 때는 좋아하지만 싫은 것을 대할 때는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좋지도 싫지도 않을 때는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 때 덤덤한 느낌이 있는데 이것을 느낌이라고 알기가 어려워서

덤덤한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아비담마 논서에서는 안식, 이식, 비식, 설식을 가질 때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이 생기는 것을 부정하고,

오직 덤덤한 느낌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자에게 안식 등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하는 것은

권할 만하지 않습니다.


안식이 일어나는 순간에 덤덤한 느낌이라 할지라도,

두려움과 같은 괴로운 느낌을 생기게 하는 괴로운 감각대상과 접촉했을 때,

안식이 불선업에 대한 과보일 경우에는 안식은 괴로운 느낌을 수반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눈으로 볼 때 덤덤한 느낌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사람을 본다거나 미운 사람을 볼 때는 즉시 덤덤한 느낌이 아닌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귀를 막게 할 수도 있고,

고약한 냄새는 두통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상한 음식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 가지(안이비설) 즐거운 감각 대상을 조건으로 생긴

덤덤한 느낌은 즐거운 느낌을 내포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즐거운 소리를 듣는 것을 즐깁니다.

이 덤덤한 느낌이 선업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청정도론의 복주석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저급한 업의 무르익은 과보인 덤덤한 느낌은 고통스러우며

그렇기 때문에 저급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불선업을 기반으로 하는 덤덤한 느낌은

덤덤하고 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악업에서 생겼기 때문에

마치 똥 무더기에서 피어난 꽃처럼 저급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괴로운 느낌만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저급합니다.

사실 악업의 과보는 결코 아픔이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선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인과의 사슬에서 느낌의 기능을 설명하면

복주석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불선업의 과보에서 기인한 덤덤한 느낌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이라고 해야 합니다.

선업의 과보에서 기인한 덤덤한 느낌은

바람직하기 때문에 즐거움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사실 알아차림이 없는 덤덤한 느낌은 무지의 느낌이라서 괴로움입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있는 덤덤한 느낌은 고요함이라서 지혜가 난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운 소리를 들으면 우리에게 즐거움 느낌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달콤한 말은 귀가 환영하는 반면에 거친 말은 귀에 거슬립니다.

평범한 소리로 일어난 어떤 느낌들은 불분명하기 때문에 덤덤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들림으로써 생기는 세 가지의 느낌(즐겁고 괴롭고 덤덤한 느낌)은

항상 알아차리고 있는 수행자에게는 매우 익숙합니다.

수행자는 소리와 귀의 부딪힘으로

괴로운 느낌이나 즐거운 느낌이 생기고,

그러한 느낌에 영향을 받은 자아나 영혼은 없으며,

느낌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압니다.


수행자의 집중이 계발됨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모든 느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게 됩니다.


들림과 마찬가지로 냄새 맡음도 조건 지어져 있습니다.

비식(鼻識)은 코와 냄새의 맞부딪침에서 일어납니다.

냄새나 코의 감성 물질 없이 냄새를 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코의 감성 물질이 없는 사람은 드뭅니다.


나는, 향수가 묻은 손수건의 냄새를 맡아도

특별한 아무런 향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비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설사 코에 정상적인 감성 물질이 있더라도

코가 막혀 있거나 향기가 나는 것이 없으면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향기는 공기에 의해서 풍겨 나와서

코의 감성 물질과 맞부딪힐 때만이 감지됩니다.

보통사람들은 냄새 맡는 자가,

사람 혹은 존재라는 전도된 인식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 비식(鼻識)을 생기게 하는 것은,

공기에 의해 전해진 향기와 지속적인 흐름인

코의 감성 물질이 맞부딪친 것, 그것입니다.


우리는 썩은 물질의 역겨운 냄새나 꽃향기에 모두 익숙합니다.

보통사람은 냄새 맡는 것을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냄새 맡음은

단지 코와 향기와 비식의 결합에서 생기는 현상일 뿐이라고 알며,

끊임없이 흐르는 모든 것들의 무상함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자와 보통 수행자의 차이입니다.


냄새를 맡을 때 그 냄새를 내가 맡는다고 하는 것은 범부들의 견해이고,

냄새를 맡을 때 그 냄새는 감각 기관과 감각 대상이 바람의 영향에 의해서

그것을 아는 마음만 있다고 아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자의 바른 견해입니다.


여기서도 냄새 하나를 통해서

내가 맡는다고 하는 것과

단지 그것은 감각 기관이 냄새를 맡는다는 것의 차이가,

지혜가 있고 없고 하는 차이를 결정합니다.


느낌은 감각 접촉의 본성에 따라서 즐거울 수도 있고,

즐겁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꽃향기나 향수의 냄새는 즐거운 느낌을 생기게 하고,

물질의 썩는 냄새는 불쾌하게 합니다.


평범한 냄새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생기게 하는데

이 느낌이 바로 덤덤한 느낌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수행자는 비식(鼻識)을 주시해서

세 가지 느낌과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맛을 아는 마음인 설식은 혀와 음식이 맞부딪쳐서 생깁니다.

혀나 음식의 맛이 없다면 설식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혀가 건강하지 못해서 감성을 상실했다면

음식 맛을 못 느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먹고 맛을 즐기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혀의 감성의 물질은 항상 변화하는 흐름에 있으며

혀의 감성 물질과 음식의 맛이 맞부딪칠 때

앞서서 설명한 심찰나를 포함한 설식이 일어납니다.

이 단계는 너무나 빨리 전개되기 때문에 단 하나의 심찰나로 여깁니다.


이 설식은 혀와 맛에 따라서 매순간 변합니다.

달고 시고 쓴 것 등을 아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혀와 맛을 아는 마음의 결합을 감각 접촉이라고 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친숙하지만,

보통 사람은 맛을 느끼는 주인공은 살아 있는 존재인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견해입니다.


먹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정신과 물질의 사건을

주시하는 수행자만이 그러한 정신과 물질은

혀와 맛과 식에 의존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압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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