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44/끝

通達無我法者 2011. 3. 11. 21:17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즉시 알아차리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청정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만약 이러한 알아차림 없이 하루를 시작하면

계속해서 탐욕과 성내는 마음으로 하루를 삽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근심과 걱정이 앞섰다면

자기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잠을 자면서도 번뇌 속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아침의 마음은 평소의 마음의 상태가 비춰진 것입니다.

아침에는 아직 욕망이 생기지 않은 때라서

알아차림이 순일하여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수행은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그대로 누운 채로 깨어나는 순간의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때에 따라서는 벌써 하루 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일 때는

평온한 상태인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아랫배의 호흡을, 일어나고 꺼지는 움직임을 지켜보십시오.

움직임을 알아차린 뒤에는 차츰 부풀고 꺼지는 바람의 요소인

공기의 압력을 그대로 지켜보십시오.

얼마간 알아차린 뒤에 천천히 팔을 뻗으면서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알아차리면서 일어나십시오.


오늘 하루를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하루의 시작이 좋으면 하루를 좋은 상태로 지내며,

하루가 좋으면 살아가는 날들이 모두 즐겁고 유익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은 제 24장, 몸의 흔들림은 위빠사나 수행과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24장을 끝으로 제가 지금까지 해온 12연기에 대한 모든 법문을 마칩니다.

그간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12연기는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위대한 진리입니다.

원래 이 진리는 있었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부처가 되실 분만이 이 진리를 발견하여 위빠사나 수행을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연기의 사슬을 끊고 연기를 탈출하셨습니다.


누구나 연기의 진리로 의심에서 해방되어야, 

온전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12연기는 위빠사나 수행의 시작을 여는 지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통하여 정신과 물질을 발견하시고,

정신과 물질이 무더기로 모인 오온으로 구성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오온을 알아차리시니 거기에 느낌이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이 느낌을 통하여 지금까지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수행만 하다가

이제 대상을 분리해서 하는 찰나집중을 아시게 됩니다.

바로 이 찰나집중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그래서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찰나집중을 통하여 무상, 고, 무아를 아시고

갈애가 끊어진 열반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런 연기가 시작부터 간단한 지혜가 아닙니다.

알고 보면 매우 쉽지만 모르는 상태에서는 연기가 복잡하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오묘한 진리를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만 알아도 됩니다.

그리고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서 사라진다는 것을 아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직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괴로움을 해결하는 단초가 바로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원인과 결과가 아니고,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서 새로운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원인이라는 것이 느낌에서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원인입니다.

갈애가 일어나지 않으면 집착이 일어나지 않고 업을 생성하지 않아

미래의 태어남이 없습니다.

태어남이 없다는 것은 죽음이 없다는 것이고 괴로움이 소멸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원인을 만든 것입니다.


12연기는 의심에서 해방되는 청정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려면 다섯 가지 장애가 발목을 잡는데

감각적 욕망, 악한 의도, 혼침과 게으름, 들뜸, 의심입니다.


이 다섯 가지 장애는 워낙 견고해서 어떤 힘으로도 부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지혜의 힘으로만이 스스로 소멸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수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위빠사나의 새로운 지혜가 나서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유일하게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이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연기입니다.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진 것을 알면

비로소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봅니다.


그래서 연기는 의심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다섯 가지 장애를 함께 제거합니다.


이제 이러한 바른 견해를 가지고 연기로 시작된 인생을

위빠사나 수행을 가득 채워서 연기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른 깨달음이며 이외에 다른 깨달음은 없습니다.

혹시 다른 것이 있을까 의심할 수도 있지만

역대 25분의 부처님께서 하나같이 모두 이 길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경전의 구절로 이것을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길은 정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수행을 하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이 도과를 성취하여 열반에 드셔서

지고의 행복을 얻으시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머물고 계시던 기원정사에 대장로 까삐나가 방문하였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그는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바로 세우고 조용히 좌선을 하였습니다.


장로를 보신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저 존자의 몸이나 마음에서 어떤 흔들림이 있는 것을 보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비구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비구들 사이에 앉아있는 저 존자의 몸이나 마음에서 어떤 흔들림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알아차림과 집중을 반복해서 수행하면

몸이나 마음의 흔들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온함의 원인이 되는 집중력을 반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먼저 알아차려서,

집중의 힘을 키워서, 그 집중의 힘으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흔들림이 없어집니다.


흔들림은 몸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과 마음의 동요를 말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중에 지혜가 성숙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몸의 흔들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속적으로 몸을 흔듭니다.

이때 몸을 흔드는 것에 대한 갈애가 일어나서 흔드는 것입니다.


집중이 된 상태에서 몸의 진동을 느끼게 되고 이 진동이 확대되면 몸을 흔듭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더 높은 단계의 지혜가 성숙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때는 흔들고자 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흔드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육체적인 흔들림은 몸의 움직임이나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말합니다.

이렇게 자꾸 몸을 흔들면 이런 상태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아 지혜가 성숙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흔들림은 들뜸, 의심, 게으름, 동요를 말합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마음이 산만해져서 싫증을 냅니다.

이때에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은 몸에 영향을 주어 흔들림이 일어나도록 하며

몸은 마음에 영향을 주어 동요를 일으킵니다.

이처럼 마음과 몸은 상호작용을 하여서

알아차림에 의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무애해도에서 수식관에 대하여 말하기를

들숨과 날숨을 집중하는 수행자의 몸이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수식관을 하는 수행자는

육체적으로나 그리고 정신적으로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마타 수행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3가지 발전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계, 정, 혜입니다. 계정혜는 팔정도의 위빠사나 수행을 말합니다.


계(戒)는 정어, 정업, 정명이고,

정(定)은 정정, 정념, 정정진이고

혜(慧)는 정견과 정사유입니다.


여기서 혜(慧)는 위빠사나의 지혜로서 높은 단계의 지혜를 뜻합니다.

계(戒)보다 정(定)이 더 높고 고귀하고 덕스러우며

정(定)보다는 혜(慧)가 더 높고 고귀하고 덕스러운 것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이중 가장 높으며 가장 고귀한 덕목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만이 수행자를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정견을 우두머리로 하여 모든 성자들의 도지를 실현하는 덕목입니다.

반면에 사마타 수행은 정정을 우두머리로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껴안는 지혜,

즉 위빠사나 지혜의 수행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는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몸이나 마음의 어떤 흔들림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은 바른 마음가짐과 바른 지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미얀마의 어떤 장소에 가면 경직되거나 실신하거나 의식불명이 되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쇠약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장소가 신성하다거나 어느 곳은 기운이 좋다거나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순수 위빠사나를 할 때 결코 이러한 바람직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행 자체가 정견과 정사유의 인도를 받는

크게 선한 지혜와 관련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의미로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런 삿된 견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견은 올바른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정견과 정사유, 그리고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위빠사나 수행자는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초보 수행자의 이익을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위빠사나에서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처음부터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빨리어의 경장이나 논장 어디에도 그러한 불행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를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할 스승을 선택할 때 신중할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오는 장애는 결코 없습니다.

잘못된 삿된 견해로 인한 수행이 여러분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여러분들의 심신을 고단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스승을 선택하느냐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은 이제 어떤 시간이나 어떤 장소에 있거나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장소가 기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외부적 환경에 몸과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있거나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입니다.


풍수다, 명당이다, 하는 것도 지극히 세속적인 관점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출세간에서는 이런 것들을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사주나 관상이나 풍수를 뛰어넘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장애가 생기더라도 ‘그렇네!’ 하고 알아차리면

그것은 이미 장애가 아니고 단지 알아차릴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장애로부터 자유롭게 사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이미 만들어 놓은 과보로 여러 가지 일에 얽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나 알아차림이 있으면

그것은 장애가 아니고 하나의 알아차릴 현상일 뿐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랜 시간 동안 12연기와 위빠사나 수행을 공부하시는데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12연기는 매우 어려운 법입니다.

이것을 단 한번 들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연기의 구조를 이해하시고 알아차리셔서

모든 수행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도과를 성취하여

지고의 행복을 얻으시기를 삼가 기원하면서

지금까지의 12연기 법문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초기불교 > 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연기와 위빠사나/143  (0) 2011.03.11
12연기와 위빠사나/142  (0) 2011.03.11
12연기와 위빠사나/141  (0) 2011.03.11
12연기와 위빠사나/140  (0) 2011.03.10
12연기와 위빠사나/139  (0) 201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