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9-4. 마음이 법을 떠나지 않는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7:32

9-4. 마음이 법을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법 가운데 머문다고 함은, 사제(四諦)에 따라서 스스로 뜻이 생함을 안다는 말이다. 이는 마땅히 얻음이니, 생함도 아니요, 얻음도 아니다. 오히려 뜻을 두려워하여 감히 범하지 못함이다. 행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항상 도에 있으며 마음이 법 가운데에 머문다.

해설
마음이 항상 법과 같이 하여 떠나지 않으면 올바른 마음이요 올바른 삶이다. 법이란 진리이니 사제(四諦)의 법에 따라서 마음이 항상 진리 속에서 움직이면 움직이고 있으나 생하지는 않는다. 법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불생불멸 속에 생하고 멸하니, 이때의 생과 멸은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면서 생이고 멸이다. 그러므로 사제를 따라서 법대로 일으킨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멸하지도 않는다. 또한 얻음도 아니다. 얻었다면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얻음이 아니고 얻지 않음도 아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 것이다. 얻었거나 얻지 않았다고 해도 진리가 아니다. 얻었다 하면 '있음'에 떨어지고, 얻지 않았다면 '없음'에 떨어지니 진실의 세계가 아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떨어지면 진실의 세계에서 멀어진다. 그러므로 마음이 법에 머물러 있어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서 법이 아닌 그릇된 일은 생가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게 된다.

불교는 진리를 아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다. 마음과 몸이 진리가 되어버린 사람은 진리를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진리를 벗어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은 법을 안 사람이요, 법과 더불어 같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如來)은 법 그대로 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如去). 여래와 여거는 같다. 부처란 법 그대로 사고 법 그대로 죽는 사람이다. 가는 것은 오는 것이요, 오는 것은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하는 바가 도에 어긋나지 않아서 도 가운데 있으며 생각하는 바가 법 가운데에 머문다. 생각하는 바가 법 진리와 떠나지 않고 행동이 이에 따르면 그것 또한 열반의 세계다. 당연히 이러한 세계가 얻어져 머물 수 있게 된다.

진리는 불생불멸이다. 용수(龍樹)도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설하여 불생불멸이 공이요, 중도라고 했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속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우주자연의 법이다. 불생불멸의 법 속에서의 생과 멸은 세속적인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 그러므로 도인은 평상심의 생멸 속에서 생멸이 아닌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고 말한다. 이때의 평상심이 생멸심이다. 그러나 그 생멸심이 생멸을 떠난 진리 속에서 일어나고 없어지므로 도라 할 수 있다. 
'아나파나사티'의 여섯 단계는 바로 이의 실천이며, 완성되면 청정이라고 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