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 육입에서 이어지는 욕망들
'촉'觸은 육입이라는 받아들임을 통해 바깥의 느낌이 내 안에 확고히 인식되어, 그냥 있던 마음과 드디어 접촉하게 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촉이란 글자에 현혹당해 신체적 접촉을 연상하시면 안 됩니다.
내 마음 바깥의 대상이 육입을 통해 내 마음과 교감작용을 불러일으켜 생각을 계속 이끌어내고 그 결과 행동에 이르게 되는 것인데, 이 촉은 대상이 생각에 침투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촉에 이은 '수'受는 촉으로 침투된 감각을 완전히 받아들여 그 감각을 기준으로 즐겁다(樂) 혹은 괴롭다(苦)라는 인식을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즐거운 것이라 생각하면 추구하려고 시도하고 괴로운 것이라 생각이 들면 피하려 하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이구나 하는 '별 볼일 없는 결정'도 포함됩니다. 실질적인 욕망을 실현하려는 아주 위험한 단계인 것입니다. 이때라도 '수受는 공空한 것인데'라고 느껴야 조금이나마 마음의 수행이 된 것입니다. 수에서 다음 단계인 '애'愛까지 넘어가면 돌이키기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여기에서 마음을 멈추어야합니다.
12연기의 무명-행-식-명색-육입-촉, 다음은 애愛입니다. 재미없는 설명을 하려니 저도 지루한데 다행히 '건수'를 만났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애愛를 골칫덩어리로 간주하는데,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인 '리그베다'나 후대 힌두교에서는 애를 우주의 성립과 존재의 원동력으로 여깁니다. 인도의 힌두사원이나 아잔타 석굴의 적나라한 '섹스신'의 부조나 '카마수트라'란 섹스 지침서 등도 사실은 신과 인간을 교감시키는 정서적인 애愛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 흔한 인도 성지순례를 갈 생각이 없어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섹스 하면 또 밀교密敎를 연상하시는 분이 있는데, 밀교 중에서도 한 부파인 좌도밀교에서 성적 결합을 통한 해탈의 실현을 부분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힌두교나 밀교나 여러분이 생각하는 외설적인 행위를 그대로 종교에서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데 어느 정도의 차이인지를 절묘한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해외 여행시 공항에서 적는 신고서가 한글과 영어로 되어 있는 줄은 아실 겁니다. 이름(Name), 이렇게 말입니다. 그 중에 남녀를 구분하는 성별란이 있습니다. 성별(Sex),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면 그 아래 '남' 혹은 '여' 라고 쓰면 됩니다.
그런데 한 젊은 미모의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부끄러운 듯이 모퉁이로 가서 조그만 글씨로 적더라는 것입니다. '가끔씩'이라고, Sex 바로 밑에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공연히 '애'愛 자에 신바람이 나서, 그 여자와 같은 자가당착에 빠지지 마시라는 겁니다.
12연기에서의 애는 성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탐닉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모두 지칭하는 말입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 사게 되는 것(바로 이어질 취取)도 바로 애에 의한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더 넓게 해석하면 싫어하는 마음은 애의 작용의 상대적 개념이긴 하지만 그 근원에는 애, 즉 탐착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탐색하는 마음을 거스르니 싫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애증愛憎 둘 다 12연기에 의하면 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본 내용은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