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151

(제9장)13. 애써 대중을 섬기다〔刻苦事衆〕

송(宋)나라 운거 간(雲居簡)스님이 처음 응(膺)스님을 배알하자 3일 간을 함께 말해 보더니 응스님은 간스님을 매우 대단하게 여겼다. 그리고는 각고의 노력으로 대중을 섬기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에 스님은 몸소 물 긷고 절구질하며 땔나무와 밥 짓는 일을 맡았다. 이렇게 절집 일을 두루 맡아보면서..

(제9장)12. 자기를 낮추고 몸을 수고롭게 하다〔卑己苦躬〕

송(宋)나라 승장(僧藏)스님은 절을 만나도 절하고 훌륭한 스님〔碩德〕을 만나도 절하였으며, 스님이나 속인이 절을 하면 몸을 구부리고 도망가 버렸다. 대중들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치 종〔奴〕처럼 자기를 굽혔고, 다른 사람의 더러운 옷을 보면 몰래 빨아 주거나, 혹은 꿰매 주기도 하였다. 무..

(제9장) 10. 만리길을 찾아가 의심을 결단하다〔萬里決疑〕

당(唐)나라 대수(大隋)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겁화(劫火)가 환하게 탈 때에 이것도 파괴될까요, 되지 않을까요?" "파괴된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가겠군요?" "그를 따라가지." 그 스님은 이를 의심하고 스승을 찾아 참구하느라고 만리에 이르도록 산천을 돌아다녔다. 찬탄하여 말한다. 옛사람은 ..

(제9장) 9. 일하지 않으면 먹질 않다〔不作不食〕

당(唐)나라 백장 회해(百丈懷海 : 749~814)스님은 백장산 꼭대기에 살면서 매일 일을 함으로써 그 공양에 보답하였다. 누군가가 그만두라고 권하면, "내 덕이 없어 대중을 수고롭게 하는구나." 라고 말하였다. 대중들이 참질 못하고 그 연장을 감춰버리자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드디어는 '하루 일하지 않..

(제9장) 8. 6년을 절구질을 하다〔六載舂粟〕

당(唐)나라 도량(道亮)스님은 조주(趙州) 난성(欒城) 사람으로 봉룡산(封龍山)에 들어가 경전 지송하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산에는 함께 사는 도반들이 30여 명이었는데, 도량스님 자신도 대중과 꼭같이 일하고, 매일 별도로 곡식 다섯 말을 절구질하는 것으로 규칙을 삼았다. 이렇게 하기 6년 동안, 일..

(제9장) 7. 몸에서 이를 잡지 않다〔蚤蝨不除〕

당(唐)나라 담운(曇韻 : 563~642)스님은 고양(高陽) 사람으로 오대산 목과사(木瓜寺)에서 홀로 외롭게 살았다. 질그릇을 굽는 굴속에 거처하였으며 옷은 오래되고 헤져 이가 바글거렸으나 뜯어먹는 대로 맡겨두고 자신을 조복(調伏) 받는 일로 삼아버렸다. 언젠가는 여름 결제를 지내는데, 산에 흙벼룩이 ..

(제9장) 6. 수고로운 일은 몸소 솔선하다〔身先苦役〕

당(唐)나라 지초(志超 : 571~641)스님은, 동주(同州) 풍익(馮翊) 사람으로 병주(幷州) 개화사(開化寺)의 찬(贊)스님에게 출가하였다. 심신을 청결하고 바르게 하였으며 모든 일을 몸소 실천하여 수백명의 대중을 편안하게 하였다. 두 끼의 공양을 항상 준비하고 6시(六時)로 참회했으며, 수고로운 부역이 있..

(제9장) 5. 서천축에서 경전을 가져오다〔西竺取經〕

당(唐)나라 현장(玄奘 : 602~664)스님은 경전을 가져오리라는 서원을 세웠다. 정관(貞觀) 3년(629)에 홀로 서쪽으로 길을 떠나 고비사막을 건너 고창(高昌)을 지나 계빈국(罽賓國)에 이르자 호랑이와 표범이 많아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현장스님은 어쩔줄 모르고 문을 닫고 앉아 있었다...

(제9장) 4. 정강이를 찌르며 마음을 다스리다〔刺처股制心〕

수(隋)나라 지순(智舜)스님은 조주(趙州) 대륙(大陸) 사람이다. 도관(道觀)을 전일하게 닦으면서 허망한 마음이 홀연히 일어나는 것을 누르지 못하면 피가 나도록 정강이를 찔렀다. 혹은 돌을 안고 탑을 돌기도 하면서 잠시도 방일하질 않았다. 그리하여 정강이 위의 찔린 상처와 돌에 벗겨진 피부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