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다 / 경산사 묘고(妙高)스님 3.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다 / 경산사 묘고(妙高)스님 지원(至元) 25(1288)년 봄, 승통(僧統) 양련 진가(楊輦眞迦)는 황제의 칙명으로 강남지방 교종과 선종의 여러 스님을 인솔하여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였다. 황제가 선종에서는 무엇을 종지로 삼느냐고 묻자, 경산사 주지 묘고(妙高)스님이 앞..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2. 해운 인간(海雲印簡) 대사(大士)의 행장 2. 해운 인간(海雲印簡) 대사(大士)의 행장 연경 경수사(慶壽寺) 해운대사(海雲大士)는 법명이 인간(印簡), 산서(山西) 땅 사람이며 성은 송(宋)씨다. 7세에 그의 아버지가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을 가르치자 스님이 물었다. ”연다[開] 하는데 무슨 종(宗)을 연다는 것이며, 밝힌다[明]는데 ..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1. 능엄경 “관음원통품”을 읽고 깨쳐 / 묘각사 정(淨)스님 國譯 産菴雜錄 下卷 1. 능엄경 “관음원통품”을 읽고 깨쳐 / 묘각사 정(淨)스님 호주(湖州) 묘각사(妙覺寺) 기당(期堂:明堂)의 정(淨)스님은 오강(吳江) 지방의 농부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할 기회를 잃고 도첩을 받은 후 묘봉 현(妙峰玄) 스님을 찾아갔다. 현스님은 중봉(中峰)스님의 법제자이다. “부..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9. 역(易)수좌의 선정 69. 역(易)수좌의 선정 역(易)수좌는 자가 무상(無象)이며 송 장군(宋 將軍)의 집안, 하씨(夏氏)의 아들이다. 팔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무술에 정통하여 일찍이 부친의 벼슬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달갑게 생각하지 않다가 관직을 버리고 출가하여 상우(上虞) 봉국사(奉國寺)에서 잡일을 하다가 출가 삭발..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8.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의 수행과 주지살이 68.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의 수행과 주지살이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은 법명이 선달(善達)이며, 선거 자씨(仙居 紫氏)자손이다. 젊은 시절 급암 신(及菴宗信)스님과 함께 행각하면서 소임을 맡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강서지방에 머물 때 설암(雪巖)스님을 찾아뵙고 대중속에 섞여 그의 회하에 들어갔는..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7. 절벽에서 떨어져 정(定)에 들다 / 단애 요의(斷崖了義)수좌 67. 절벽에서 떨어져 정(定)에 들다 / 단애 요의(斷崖了義)수좌 단애 의(斷崖了義)수좌는 고봉(高峰)스님 회하에서 참구하였는데 법어를 깨닫지 못한다고 고봉스님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떠밀어 버렸다. 그날 밤 많은 눈이 내렸으므로 대중들은 그가 이미 죽었으리라 여겼다. 이튿날 눈이 멈추어 도반..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6. 옛 터에 암자짓고 분수껏 살다 / 무견(無見)선사 66. 옛 터에 암자짓고 분수껏 살다 / 무견(無見)선사 무견(無見)선사는 선거 섭(仙居葉)씨의 아들로, 대대로 유학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준수한 재주를 지녀 천령사(天寧寺) 고전(古田)화상의 내기(內記)로 있다가 서암사(瑞岩寺) 방산(方山)스님 회하에서 참구하여 그의 법요를 모두 터득하고서..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5. 청빈하게 살다 간 말세의 선지식 / 석옥 청공(石屋淸珙)스님 65. 청빈하게 살다 간 말세의 선지식 / 석옥 청공(石屋淸珙)스님 석옥 공(石屋珙)스님은 도량사(道場寺) 급암(及菴)스님을 친견하고 뒤에 오흥(吳興) 하포산(霞浦山)에 은거하였는데 청빈한 생활로 시주를 바라지 않았으며 궁하면 밥을 먹지 않고 물만 마셨다. 인품이 자애롭고 자상하여 중생을 아껴주..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4. 탁발승 성지암(誠止岩)스님 64. 탁발승 성지암(誠止岩)스님 성지암(誠止岩)스님은 항주 호포사(虎跑寺)의 주지이다. 처음엔 포납(布衲)스님을 모시다가 뒤이어 천지사(天池寺) 원옹 신(元翁信)스님을 찾아뵙고 깨우친 바 있어 그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호포사는 원래부터 살림살이가 가난했는데도 수십 명의 승려가 살았으..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
63. 포납(布衲)선사의 원숙한 문장력 63. 포납(布衲)선사의 원숙한 문장력 포납(布衲)선사는 명주(明州) 정해(定海) 사람이며, 고봉스님의 법을 이었다. 일찍이 영명(永明)스님의 “산거시(山居詩)”에 화운(和韻)을 하였는데 그 의미야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문장력은 원숙하여 때로는 원운(原韻)보다도 훌륭한 부분이 있었다. 임종 때 게.. 산암잡록(山艤雜錄) 200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