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24 인천보감(人天寶鑑) 한퇴지가 그 자신이 불교를 돕지 않고 배척한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였고, 그것이 구양수(願易修)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불법이 우리 중국의 근심거리가 된 지 천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불교에 현혹되지 않고 세상에서 우뚝하게 힘을 쓰는 사랍들은 모두 불교.. 성철스님 2008.01.21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23 인천보감(人天寶鑑) 자수사 묘총(妙總)선사는 소씨 원우(元祐 : 1086~1093)년 간에 승상을 지낸 분의 손녀다. 열다섯살 때 선(輝)이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으나,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생은 어디서 오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 기세 대해 유투심을 냈다. 그 생각만 하다가 홀연히 깨달은 있었으나 스스로 별.. 성철스님 2008.01.21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22 인천보감(人天寶鑑) 황룡 심(黃龍祖心)선사는 남웅(南雄)사람이다. 유생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열아홉살에 눈이 멀어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홀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행각하면서 남(黃龍祖心)선사를 찾아 뵈었는데 비록이 일을 깊이 믿기는 하였으나 깨닫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하직을 하고 운봉(.. 성철스님 2008.01.21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21 인천보감(人天寶鑑) 적실 광(寂室慧光 :宋 운문종)선사가 영은사(靈隱寺) 주지로 있을 때였다. 그의 형이 찾아왔는데 차만 끓여주고는 물러가 버리니 형이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소임맡은 이가 창고 방으로 맞아들여 음식을 잘 대접하였는데, 혜광선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대접받으면 뒷.. 성철스님 2008.01.21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20 인천보감(人天寶鑑) 무외 구(無畏久)법사는 여조(餘姚)사람이다. 혜각 벽(慧覺壁)스님에게 귀의하여 종지를 얻고 훗날 두루 선법회를 찾아다니며 공부하였다. 언젠가는 경산(徑山) 불일(佛日 ; 大慧)선사의 방장실에 간 적이 있었다. 불일선사는 밤에 앉을 때면 반드시 법사를 불러 천태(天台)의 이론과 .. 성철스님 2008.01.21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19 인천보감(人天寶鑑) 불등 수순(佛燈守珣)선사는 삽천( 川)사람인데 오랫동안 불감 혜근(佛鍵慧勳)선사에게 귀의해서 공부하였다. 대중에 섞여 살며 법을 묻곤 하였는데, 까마득하여 아무것도 깨달은 바가 없자 갑자기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 생에서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맹세코 이불을 .. 성철스님 2008.01.21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18 인천보감(人天寶鑑) 소동파(蘇東坡)가 말하였다. ꡒ배가 고프거든 비로소 밥을 �되 배부르기 전에 그만 먹어야 한다. 산보하고 거닐며 배를 꺼트려 배가 비게 되면 조용한 방에 들어가 단정히 앉는다. 그리고는 생각을 가라앉혀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센다. 하나에서 열까지, 열에서 백까지 세.. 성철스님 2008.01.04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17 인천보감(人天寶鑑) 영지사(靈芝寺) 원조(元照 : 1048~1116)율사는 전당(錢塘)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속세의 인연이 익어져 나이 열여덟에 경에 통달하여 출가하였으며, 사미로 있을 때 이미 대중을 위해 경을 강의하였다. 계율을 배우면서는 배울만한 스승이 없다고 늘 탄식하였다. 당시 신오 처겸(神悟.. 성철스님 2008.01.04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16 인천보감(人天寶鑑) 효종(孝宗:宋1163∼1189재위)황제가 경산사(徑山寺) 주지 보인(寶印 :1109∼1190)선사를 선덕전(選德殿)에 초청하여 말하였다. “3교(三敎:佛儒仙) 성인들의 도리는 본래 같은 것입니까?” 보인선사가 아뢰었다. “그것은 허공에 동서남북이 애초에 따로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 성철스님 2008.01.04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15 인천보감(人天寶鑑) 해월 변도사(海月辯都事:도사는 都僧正으로 승직의 최고위를 말함)는 운간(雲間) 사람이다. 태어나면서 남다른 바가 있어 그의 부모가 보조사(普照寺)에 들여보내 출가시켰다. 명지(明智)법사에게 법을 얻었는데 명지법사가 늙자 명을 받고 8년간 대신 강의를 하다가 마침내 절 일.. 성철스님 2008.01.04